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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시시각각> 꼼꼼한 달진씨

관리자

   <노재현 시시각각>   꼼꼼한 달진씨

 

1960년대 말, 대전 충남중학교에 다니던 김달진군은 『여원』 『주부생활』 같은 여성 잡지에 요샛말로 ‘필(feel)’이 꽂혔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바라지게 육아·살림법이나 원만한 성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잡지에 끼어 있던 ‘이달의 명화’ 화보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피카소의 그림 따위를 정성스럽게 모으기 시작했다. 그림 한 장 한 장 수집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고, 소장품이 쌓일수록 마음도 뿌듯해졌다.

고교 3년 때인 1972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을 관람하고 나서 김달진씨는 미술 자료 수집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작정했다. 아예 전문 화가의 길을 걷든지, 아니면 나중에 돈이 될 미술품을 사 모으든지 해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철 지난 전시 도록(圖錄)이나 간행물에만 열정을 쏟았다. 화장품 회사 사보 『향장』이나 농민잡지 『농원』에 실린 그림도 수집 대상이었다. 지독하게 발품을 팔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미술 월간지 『전시계』에서 기자 겸 사환으로 일하던 1981년, 김달진씨는 수집한 자료들을 갖고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감탄한 이 관장은 그를 미술관의 자료 담당 임시직으로 천거했다. 오늘날의 ‘김달진미술연구소장 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지금도 이경성씨를 ‘평생의 멘토’로 받든다.

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제 저녁 서울 종로구 통의동 3층 건물 지하 방을 찾았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개최한 ‘미술 정기 간행물전 1921~2008’ 오픈 기념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김달진(53) 관장에게는 별명이 여러 개 붙어 있다. ‘금요일의 사나이’ ‘미술계 114’ ‘걸어다니는 미술연감’ 등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큰 가방을 둘러메고 인사동·사간동 일대 화랑가와 신문사 문화부에 들러 최신 자료를 수집해 갔기 때문에 짓궂은 기자들은 그를 ‘미술계 넝마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시회 도록이 좀 무거운가. 그런데도 그는 요즘도 젊은 직원을 시키지 않고 손수 ‘넝마’를 모으러 다닌다.

그래서 그제 열린 기념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집념의 사나이의 업적을 기리고 축하하는 자리여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김달진씨도 “좋은 날이지만 사실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인사말의 운을 뗐다. “미술자료관이 정식으로 등록되면서 예상했던 대로 공간 부족이라는 더 큰 과제에 봉착했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모은 자료는 총 18t 분량. 국립현대미술관 다음으로 많은 소장량이다.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세키노 다다스(關野貞)의 『조선미술사』 『이왕가미술관요람』 『조선미술전람회도록』 등 희귀본도 즐비하다. 그러나 200㎡가량(60평)의 지하 공간에 빽빽이 들여놓은 150개의 6단 서가로는 13.5t밖에 소화할 수 없었다. 나머지 4.5t은 고향인 충북 옥천의 형님댁 광에 쌓여 있다.

안타까운 것은 좁은 공간만이 아니다. 마침 내린 비 탓에 서고의 두 곳과 학예실·복도 등 다섯 군데 천장에서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날은 행사 때문에 잠시 꺼 두었지만 평소에는 굉음을 내는 제습기 두 대를 하루 종일 가동한다. 아침에 출근한 직원은 제습기에 가득 찬 물을 버리고 다시 스위치를 켜는 게 첫 일과다. 지상에 번듯한 전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돈 때문이다.

한 개인이 생활고를 무릅쓰고 36년간 한 우물을 판 것만도 대단하지 않은가. 기록문화에 취약한 우리 풍토에서 김씨는 홀로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따지고 보면 국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셈이다. 그렇다면 소장 자료를 제대로 보존·전시할 수 있게끔 넓고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일 정도는 우리 사회가 맡을 때가 됐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 중앙일보 2008.10.24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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